몇 해 전 옷장을 정리하면서 검정 봉투 두 개를 채웠다. 한 계절 입고 형태가 무너진 니트, 두 번 빨자 목이 늘어난 티셔츠, 밑단 실이 풀려 손댈 수 없게 된 바지. 버리는 동안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부터 옷을 살 때 하는 질문이 바뀌었다. 예쁘냐가 아니라, 이 옷을 몇 번 입을 수 있느냐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그 질문 하나로 옷장이 꽤 조용해졌다.
오래 갈 옷은 손끝이 먼저 알려준다. 원단을 엄지와 검지로 살짝 눌러보면 밀도가 느껴진다. 실이 촘촘하게 들어간 것은 눌러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고, 얇게 벌어진 것은 손을 떼도 눌린 자리가 남는다. 빛에 비춰봤을 때 실 사이로 빛이 성하게 새어 나오면 몇 번 입고 늘어난다. 니트는 밑단을 한 번 당겨보면 안다. 탄력 있게 돌아오는 것과 힘없이 늘어져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옷이다.
봉제도 뒤집어보면 다 보인다. 시접이 넉넉하게 남아 있으면 나중에 품을 줄일 수도 늘릴 수도 있다. 시접을 종이처럼 얇게 잘라 오버로크만 쳐놓은 옷은 한 번 뜯기면 손댈 방법이 없다. 옆선 스티치가 두 줄로 박혀 있는지, 겨드랑이와 밑단처럼 힘을 받는 지점에 되박음질이 되어 있는지도 본다. 여분 단추가 안쪽에 달려 있는 옷은 만든 사람이 오래 입히려고 했다는 뜻이다.
결국 오래 입는 옷의 조건은 튼튼함만이 아니다. 고칠 수 있어야 한다. 단추가 떨어지면 달 수 있고, 무릎이 닳으면 안쪽에서 덧댈 수 있고, 허리가 남으면 줄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접착으로 붙여 만든 부분이 많은 옷은 피한다. 실로 꿰맨 것은 다시 꿰맬 수 있지만 붙인 것은 떨어지면 끝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값이 아니라 만드는 방식이 옷의 수명을 정한다는 게 분명해진다.
색을 고르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 계절에만 유난히 눈에 띄는 색은 두 해가 지나면 옷에 날짜가 찍혀 보인다. 반대로 남색, 짙은 회색, 아이보리, 올리브 같은 색은 십 년이 지나도 그냥 그 색이다. 유행하는 색은 스카프나 양말처럼 작고 바꾸기 쉬운 것에 넣고, 코트와 재킷처럼 오래 쓸 것에는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색을 둔다. 이 배분만 잘해도 옷장이 낡지 않는다.
가장 좋은 옷은 새로 만든 옷이 아니라, 이미 가진 옷을 한 해 더 입게 만드는 옷이다.
사실 옷을 가장 빨리 망치는 건 세탁기다. 겉옷은 계절이 끝날 때 한 번만 손보고, 그전에는 브러시로 결 방향대로 쓸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니트는 물에 담가 눌러 빨고 비틀지 않는다. 청바지는 자주 빨지 않는 대신 뒤집어서 바람이 통하는 곳에 걸어둔다. 세탁 횟수를 반으로 줄이면 옷의 수명은 배로 늘어난다. 아껴서가 아니라 옷이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서다.
보관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코트는 어깨가 넓은 옷걸이에, 니트는 접어서 눕혀둔다. 니트를 옷걸이에 걸면 자기 무게로 어깨가 늘어나 다음 계절에는 다른 옷이 되어 있다. 여름 동안 울을 넣어둘 때는 세탁을 마친 뒤에 넣는다. 남아 있는 땀과 기름기가 좀을 부른다. 서랍을 열었을 때 옷들이 가지런한 모습을 보는 기분도 생각보다 큰 보상이다.
소재를 알아두면 고를 때 훨씬 편해진다. 울은 냄새를 잘 붙잡지 않고 주름이 스스로 펴지는 성질이 있어 겨울 옷에 오랫동안 쓰여 왔다. 리넨은 처음에 뻣뻣하지만 입을수록 부드러워지고 세탁에도 약하지 않다. 코튼은 다루기가 쉬운 대신 얇은 것을 고르면 금방 늘어난다. 섞어 짠 원단도 나쁘지 않다. 다만 신축성을 내는 실이 많이 들어간 옷은 몇 해가 지나면 그 실만 먼저 늘어나 형태가 무너진다. 라벨을 한 번 확인하는 습관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충동적으로 사지 않는 방법도 하나 있다. 마음에 들면 사진을 찍어두고 이틀 뒤에 다시 본다. 이틀 뒤에도 그 사진을 여러 번 열어보게 되면 사고, 아무 감정도 생기지 않으면 지운다. 이 규칙을 지킨 뒤로 옷장에 들어오는 옷의 수가 절반이 되었고, 대신 들어온 옷들은 거의 다 자주 입는다. 옷을 덜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옷장을 여는 매 순간 다 입고 싶은 상태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가진 옷을 다시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계절이 바뀔 때 옷장 안의 옷을 전부 꺼내 한 번씩 걸쳐본다. 작아진 것, 어울리지 않게 된 것, 잊고 있던 것이 갈린다. 잊고 있던 옷을 다시 만나는 게 이 작업의 가장 재밌는 대목이다. 새 옷을 살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이 자주 여기서 온다. 옷장 안쪽에 두 해쯤 방치되어 있던 셔츠가 이번 봄에 제일 자주 입는 옷이 되기도 한다.
지금 제일 좋아하는 옷은 삼 년 전에 무릎을 덧댄 코튼 바지다. 안쪽에 다른 색 천을 대었더니 그 자리가 오히려 무늬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아쉬웠는데 지금은 이 바지의 얼굴이 되었다. 옷을 오래 입는 일은 참는 일이 아니었다. 같은 옷이 시간과 함께 조금씩 달라지는 걸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러니 다음 옷을 살 때도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이 옷과 몇 해를 같이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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